소설책은 보통은 영화를 보듯이 스토리를 따라서 읽었지만, 이 책은 스토리는 크게 중요치 않은 책이었다. 일어나는 사건들에서 나타나는 조르바 라는 인물 캐릭터의 모습들이, 그리고 그 곳에 숨은 철학을 찾아내는 활동이 나에게 와닿았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탓에 반납일을 앞두고, 체크해뒀던 주요 문구만 정리하려 한다.
p.9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p.13. 미래라는 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p.24.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p.31.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요, 자유 말이오.
p.39. 내가 보기에는, 두목은 배고파 본 적도, 죽여 본 적도, 훔쳐 본 적도, 간음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그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 수 있겠어요? 당신 머리는 순진하고 살갗은 햇빛에 타 보지 않았어요.
p.40. 우리 같은 것들에게 벼락을 내리지 않고 자유를 주신 하느님이라니.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p.89. 그는 남자나, 꽃 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자신에게 묻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p.114.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씩은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p.130. 침대 위에 우두커니 앉은 채 깡그리 낭비하고 만 내 인생을 생각했다. 열린 문을 통해, 나는 별빛으로 조르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밤새처럼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가 부러웠다.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조르바라고 나는 생각했다.
p.139. 우리는 밤이 깊도록 화덕 옆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지금 한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p.161. 그리스, 우리 조국, 의무 같은 게 다 뭐야. 진실은 여기 있는데! 자네 답은 이랬지. 그리스, 우리 조국, 의무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우리는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기꺼이 파멸을 맞아들여야 하는 것이네.
p.191. 나는 등을 다시 기둥의 못에다 걸고 조르바가 일하는 걸 지켜보았다. 그는 완전히 일에 빠져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건 오로지 일뿐이었다. 그는 대지와 곡괭이와 갈탄에 호흡을 일치시키고 있었다.
p.211.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p.232. 인간의 본질은 야만스럽고, 거칠며 불순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과 육체와 불만의 호소로 이루어진 것이다.
p.234. 예술이란 사실은 마법의 주문... 예술은 우리의 오장육부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살인적인 힘을 충동질한다. 필사적으로 살인과 파괴와 증오와 타락을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술은 달콤한 노래로 다시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이다.
p.236. 아무렴.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p.253. 두목 성공하지 못하면 보따리 싸들고 이리나 곰이나 아무거나 만나 잡아먹히는 편이 나을 겁니다. 차라리 짐승에게 좋은 일이나 하는 셈이죠. 하느님이 그런 짐승을 이 땅으로 내려보낸 건 우리 같은 놈들을 잡아먹어주어 타락을 막기 위해서일 겁니다.
p.254.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p.330. 아, 얼마나 멋진 곳인가! 이 고독, 이 행복!
p. 338. 하지만 두목, 우선 먹고 보자는 겁니다. 먹고 나서 당신처럼 <네 것>인지 <내 것>인지 따져 보자 이겁니다. 당신은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있을 동안 나는 성냥개비를 분질러 이빨을 쑤시고 있을 겁니다요.
p.373.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p.385. <뉘 집 아이들이야?> 내가 불가리아 말로 물었지요. 가장 큰 사내아이가 고개를 들더군요. <신부 댁 애들입니다. 아버지는 며칠 전 마구간에서 목을 잘렸답니다.> 이러는 게 아니겠어요. 눈물이 핑 돌고 지구가 연자매 돌 듯이 빙글빙글 돕디다. 내가 벽을 지고 앉자 그제서 멈추더군요. <이리 오너라, 얘들아. 내 가까이 오렴.> 나는 이렇게 말하며 지갑을 꺼냈습니다. 터키 파운드랑 그리스 돈이 가득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그 돈을 몽땅 바닥에다 쏟았지요. <자, 가져가거라. 마음대로 가지렴.>내가 소리쳤습니다. 애들이 우르르 땅에 엎드리더니 허겁지겁 돈을 집더군요. <... 늬들 것이니라, 늬들 것이니라. 그러니 마음대로 집어 가거라.>
p.387.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 인이든, 불가리라 인이든 터키 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p.389.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p.394.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