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고찰2019. 12. 13. 02:09

2019/12/12 집으로 돌아오는 길(지방도)에 도로공사로 한쪽방향 차선이 차단되었다.

<이미지는 유사 이미지를 가져온 것입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차량 흐름 통제를 위해 통제원 분께서 수고하고 계셨다.

그런데 이번에 마주친 분들은 조금 특별했다.

 

보통은 반대쪽 차들 통행을 위해서 정지를 시키고 보내는 통제만 하시는데,

오늘 마주친 분은 오른손은 봉을 가로로 들고, 왼손은 손바닥을 펴 보이시며 차를 세운 후,

정중하게 인사를 하셨다. (나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

 

마치 공사하게되어 교통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의미 같았다.

생각해 보면 공사가 교통의 불편을 야기하는 것은 맞으나,

도로공사의 결정은 공사업체가 하는 것이 아니며,  맡겨진 업체 직원이 죄송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분들은 형식적인 교통통제 이외에 이정도로 마음을 써주셨다.

요즘은 날도 제법 추운터라 대충 안내하고 싶을만도 한데 말이다.

 

오늘하루, 도로공사를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께 더욱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미지 출처 : http://m.banwol.net/news/articleView.html?idxno=2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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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온의 일상
일상속 고찰2019. 12. 11. 00:36

2019/12/10 슬픔 속에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까?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을 읽다가 접하게 된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한 구절을 감상해 보았다.

I hold it true, whate'er befall;  어떠한 운명이 오든지
I feel it, when I sorrow most;  내 가장 슬플 때 나는 느끼느니
'Tis better to have loved and lost  사랑을 하고 잃은 것은
Than never to have loved at all.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 낫다

By Alfred, Lord Tennyson (1809–1892)

전문 : In Memoriam A. H. H. OBIIT MDCCCXXXIII: 27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슬픔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너무 큰 슬픔으로 낙심하고 좌절 할 수 있다.

 

하지만

 

비애를 느낄만큼 내 마음을 끌어당긴 경험을 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행운이었음을 감사할 수 있어야 겠다.

 

그리도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감정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출처 : https://news.milli.az/interest/5998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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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온의 일상
일상속 고찰2019. 12. 7. 11:27

2012/12/06 안동 성진골 벽화마을에는 재밌는 요소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낙서다.

학창시절 학교를 통학하는 시내버스 좌석 뒷편, 벽면 등에는 항상 낙서가 많았다.

심지어 대학교 열람실이나 화장실에 까지 이어진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잘 볼 수 없다가, 어딘가 여행을 가면 많이 보게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던데

명성까진 아니더라도 낙서라도 남기고 싶었던 걸까...

 

어떤 부모님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식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자식중 하나는 그 일을 이어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다.

 

내가 사라지더라도, 또는 없더라도 나의 발자취가 남았으면 하면 바램은

가르치지 않아도 벌이 육각형 모양으로 집을짓는것과 같이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관성에 이끌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무언가 남기고 싶은 마음을 작은 낙서로 시작했지만,

성장한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이름을 남겼으면 좋겠다.

 

나는 살기좋은 세상을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다.

나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남긴 세상에서 다음 세대들이 즐겁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뜻깊을까...

 

 

<안동 벽화마을인 성진골은 도심에서 떨어진 곳이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Posted by 이온의 일상
일상속 고찰2019. 12. 4. 00:08

2019/12/03 잠처럼 달콤한 것이 없다.

출퇴근 생활을 할 때, 한창 꿈을꾸며 잠들어 있다가

새벽 5시쯤 깨어서, "아직 2시간이나 남았어!!!" 하면서 다시금 달콤한 잠에 빠지곤 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지금은 잠을 맘대로 잘 수 있는 것 만큼은 너무 행복한 일이다.

 

맘대로 잘 수 있다고 해서 나태해질 생각은 없다.

 

약간의 비기이기도 한데, 예전에는 별 생각없이 꿈을 꾸었다면, 

요즘은 전날 여러가지 고심을 한 것들을 꿈에서도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아침에 깨어서도 일어날 시간 까지 좀 더 사고를 하다가 다시 잠에 빠져드는 경우도 많다.

 

어떤 사람은 잠자는 시간동안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재충전 되고, 잠자는 동안도 꿈을 통해 사고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사고를 정리하는 하는 것은 잠을 자는것 보다 숙고를 하던 중 졸면서 더 잘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매일 밤 잠드는 시간을 이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물론 매번 꿈이 마음대로 되진 않지만, 점점 더 도움이 되는 횟수를 늘리고 있다.

 

꿈에서 방향을 정립하고, 깨어나 꿈을 실현할 계획을 세운다!

이 만큼 멋진 일이 어디 있을까!

 

Posted by 이온의 일상
일상속 고찰2019. 12. 2. 23:55

2019/12/02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다.

1년전의 내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유를 알것 같다.

물론 모두가 동일하진 않겠지만, 나의 경우 "투명한 사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투명한 사고"라는 모호한 말보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했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사고한 결과를 외부로 방출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못하는 것은 자신의 사고를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생각이 없는것이 아니라, 생각을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이를 "탁한 사고" 와 비교되는 "투명한 사고"라 표현해 보았다.

 

나 역시도 내가 잘 아는 분야의 "지식"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때에는 말을 잘 했다.

하지만 나의 지식분야를 벗어나면, 아무말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이제 조금이나마 스스로의 논리와 철학을 정립하여,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지식분야를 이야기 하더라도, 나의 의견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사고"체계가 정립된 것이다.

 

다행이 이제는 어떤 분야의 대화에도 함께 끼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다른사람과의 대화에 잘 끼지 못해서 고민하는이가 있다면,

자신만의 (논리와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사고 체계를 갖추는 것은 어떨까?

 

 

 

그림 출처 : https://www.mentalfloss.com/article/50684/it-possible-think-without-language

Posted by 이온의 일상